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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믿었던 수능의 배신] 수능 만점자가 '전국 1등' 아닌 이유는?

By. 관리자

2022-02-23

[굳게 믿었던 수능의 배신] 수능 만점자가 '전국 1등' 아닌 이유는?


같은 점수에도 선택과목·대학 따라 당락 갈려 … 점수 왜곡에도 평가원은 뒷짐



 


2022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이번 수능에서 만점자는 1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수험생은 유일한 '전국 1등'이었을까? 이론적으로 이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현 수능에서는 학생이 받은 점수를 그대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 탐구 선택과목은 17개에 달한다. 이번 수능부터 국어와 수학에도 선택과목이 생겼다. 평가원은 선택에 따른 유불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표준점수'를 도입했다고 말한다. 선택과목 간 난이도와 응시자 집단의 수준을 고려한다는 취지였다.
한데 선택과목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이 같은 취지는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선택과목에 응시했는지에 따라 당락이 뒤바뀌는 시점까지 왔다. 실제 정시 모집 지원 사례를 통해 실태를 살펴봤다.







2022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은 수학에서 '확률과 통계', 탐구 과목에서 '사회·문화'와 '경제'를 선택했다. '확률과 통계' 만점자의 표준점수는 144점이다. 반면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만점자의 표준점수는 147점이다. 수학에서 똑같은 만점을 받아도 표준점수 차가 3점 발생한다.

만점을 받은 학생이 선택한 '사회·문화'와 '경제' 두 과목의 표준점수 합은 134점이다. 반면 '지구과학Ⅰ'과 '지구과학Ⅱ'에 응시해 만점을 받는다면 각각 74점, 77점으로 표준점수 합 151점을 받게 된다. 어떤 과목에 응시했느냐에 따라 탐구 두 과목에서만 17점의 차이가 발생한다. 실제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공개 자료에 따르면 수능 만점자보다 표준점수의 합이 높은 학생은 약 95명으로 추정된다.

◆탐구 만점자 표준점수 차, 최대 14점 = 평가원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이번 수능부터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구분을 없앴다. 기존에는 인문·사회 계열에 지원할 학생들은 사탐 9개 과목, 자연·이공 계열에 지원할 학생들은 과탐 8개 과목 중에서 응시 과목을 정했지만, 이제는 17개 과목 중에서 계열에 관계없이 두 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문제는 선택에 따른 유불리가 여전했다는 점이다. 이번 수능에서도 어떤 선택과목에 응시하느냐에 따라 만점자의 표준점수가 크게 벌어졌다. 표준점수 최고점을 보인 '지구과학Ⅱ'와 최저점인 '정치와 법'의 점수 차는 14점에 달했다(표). 선택과목마다 응시자 집단의 수준 차가 발생하는 데다 난도 조절에도 거듭 실패하면서 이 같은 유불리는 해마다 이어졌다. 평가원 역시 "선택 영역 및 과목 간 난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자인한다.

◆탐구 선택 따라 당락이 뒤바뀐다? = 탐구 영역에서 과목별 원점수가 같아도 표준점수가 달라지는 구조는 어떤 과목을 선택했는지가 당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2022학년도 정시 모집 실제 지원 사례에서 탐구 과목 선택에 따라 당락이 뒤바뀐 경우를 찾아봤다.

이번 정시에서 성균관대 사회과학 계열에 지원한 A, B학생이 있다. A는 B보다 수학이 3점 높고, B는 A보다 국어가 3점 높지만 두 학생의 국어·수학 표준점수 합은 260점으로 같다. 탐구 과목의 경우 A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에서 각각 2점, 3점짜리 문제를 틀렸다(원점수 기준). B는 '세계사'를 만점을 받고, '동아시아사'에서 3점짜리 문제를 1개 틀렸지만 탐구 영역의 표준점수 합은 130점으로 같다.

성균관대는 정시 전형에서 탐구 영역을 표준점수가 아닌 백분위로 반영한다. 백분위란 해당 수험생보다 낮은 표준점수를 받은 학생의 비율을 나타낸 수치다. 백분위 90이란 100명을 기준으로 해당 학생보다 표준점수가 낮은 학생이 90명 있다는 의미다. 탐구 두 과목에서 한 문제만 틀린 B가 불합격하고, 두 문제를 틀린 A가 합격한 이유는 선택과목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사'에서 만점을 받아도 백분위는 97점이었다. 반면 '윤리와 사상'에서 3점짜리 한 문항을 틀려도 백분위는 97점으로 같다. '세계사'보다 '윤리와 사상'이 상대적으로 어렵게 출제돼 '세계사'에서는 만점을 받아야 상위 3% 안에 들 수 있지만, '윤리와 사상'은 3점짜리 한 문항을 틀려도 상위 3% 안에 포함될 수 있었다.

두 학생이 응시한 과목 중 표준점수는 64점으로 같지만 백분위에 차이가 있는 과목은 '생활과 윤리', '동아시아사'다. 두 과목에서 동일하게 각각 한 문제씩 틀려도 백분위는 94점, 90점으로 4점 차이가 난다. 이 백분위 점수 차로 인해 탐구 두 과목에서 두 문제를 틀린 A는 합격하고, 한 문제를 틀린 B는 불합격하는 결과를 낳았다.

◆선택형 수능이 낳은 '교차지원' 폭발 = 이번 정시에서는 '교차지원'이 이슈가 됐다. 수학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고, 과학탐구 두 과목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대거 인문 계열 모집 단위에 지원한 것이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대학의 인문 계열 모집 단위에 지원한 7669건 중 과탐 과목에 응시한 학생은 2495명으로 32.53%를 차지했다. 예년까지 인문 계열 모집 단위에 지원하는 과탐 응시자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학생의 과목 선택과 문·이과 통폐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수능 역시 공통+선택과목 체제로 개편됐다. 수학의 경우 '수학Ⅰ' '수학Ⅱ'를 공통 과목으로 하고,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 학생이 선택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선택과목 도입에 따라 새로운 점수 조정 방식이 나왔다. 각 선택과목을 응시한 집단의 공통 과목 평균을 더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은 선택과목에서 점수를 더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데 수능 개편 취지와는 다르게 주요 대학이 응시 과목을 지정하고 나섰다. 자연 계열 모집 단위의 경우 수학은 '미적분'이나 '기하', 과탐 두 과목에 응시하도록 했다. 선택과목에 제한이 생기면서 주요 대학 자연 계열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수학에서 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교차지원으로 대학을 높인다? = '확률과 통계' 응시자 중 점수가 높은 수험생 수가 크게 줄면서 주요 대학의 인문 계열 학과 지원 가능 점수는 전년에 비해 하락한 반면, 자연 계열 학과의 지원 가능 점수는 상승하는 구조가 됐다.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학생들이 인문계열 모집 단위로 교차지원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이번 정시에서 교차지원을 활용한 한양대 합격 사례를 찾아봤다. 수학에서 '미적분', 과탐 두 과목에 응시한 이 학생의 표준점수 합은 384점이다. '미적분' 표준점수 124점은 3등급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개편 전 수능에서 자연 계열 학생들이 응시하던 '수학 가형'을 치렀다면 표준점수 115점 이하로 4등급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생이 만약 건국대 기계공학과, 전기전자공학과, 시스템생명공학과에 지원했다면 최초 합격이 불가능한 성적이었다.


김기수 기자 · 정애선 내일교육 기자 asjung@naeil.com [출처:내일신문 » 뉴스보기 (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