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 교수가 말하는 ‘수재를 길러낸 부모들의 공통점’
By. 관리자
2024-03-08
(인터뷰①에 이어)
“직접 만난 영재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요?” 송용진 인하대학교 수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뛰어난 암기력이나 빠른 암산 등의 대답을 기대했으나,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겸손’이었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는 지난 1995년부터 20여 년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nternational Mathematical Olympiad, IMO)’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는 상위 0.001% 안에 드는 영재들로 꼽힌다. 송 교수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이들을 지켜봐 왔다. 그가 만난 대한민국 상위 0.001% 영재들은 어떤 모습일까. 송 교수와 함께 ‘영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송용진 교수와의 문답.
─ 아이들의 정서교육에서 ‘훈육’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죠. 부모의 훈육이 아이의 영재성 계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요?
“영재성 계발이란 주로 학업 성취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학업 성취보다도 더 중요한 건 그 영재가 결국 ‘실력자’가 되어야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죠. 좋은 학업 성취를 위해서도,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좋은 성품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조급해하지 않고, 긴 호흡을 가지고 교육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그래서 부모들의 철학, 침착성, 안목 등이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5세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매우 세심한 훈육이 필요합니다. 훈육은 칭찬하기, 선 긋기, 야단치기 3요소로 이루어지고 이 요소 중 칭찬하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칭찬은 적시에 적당한 정도로 해야 합니다. 스스로 뭔가를 잘했을 때도 해 줘야 하지만, 무엇보다 남들에게 선행을 했을 때 해주어야 합니다. ‘너는 천재야’ ‘너는 뭐든지 잘해’와 같은 과다한 칭찬은 아이가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거나, 완벽주의에 빠지기 쉬우니 조심해야 합니다.
선 긋기는 굳이 실행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부모의 선을 잘 압니다. 부모 스스로가 마음속으로 굳게 선 긋기를 하면 됩니다.
야단치기에서는 3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야단칠 때 늘 같은 태도와 방식으로 야단칠 것, 둘째는 절대로 화내지 말고 야단치기, 셋째는 가능한 짧은 시간 동안만 야단치기입니다. 훈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굳은 마음으로 이러한 원칙을 지키며 훈육한다면 만 5~6세 정도부터 야단칠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아이를 영재로, 영재를 수재로 키울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일까요?
“언어교육과 수학교육은 아이들 기초 소양 교육의 양대 산맥입니다. 학습 에너지와 호기심이 넘치는 영재에게는 이 두 가지 교육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좋은 소재이기도 합니다.
외국어를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것은 지능 발달과 사회성과 문화적 감각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너무 어릴 때부터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영재가 아닌데도 무리하게 외국어 공부를 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아이가 수학과 영어 공부에 흥미를 느낀다면 부담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시키면 됩니다. 아무리 영재라 할지라도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장단점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는 편이에요. 학습지와 유튜브 또는 부모의 지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수학교육은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수학이 중요해지는데요, 수학 공부는 좋은 학습 태도와 습관을 기를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수학을 배우는 이유를 수학적 지식을 익히는 것보다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수학 공부를 통해 그런 거창한 사고력 증진도 좋지만, 좋은 학습 태도만이라도 가져갈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더불어 수학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된다면 앞으로 아이의 학업 성취는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볼 수도 있어요.”
─ 사고력이나 창의력 증진을 위한 교육은 하지 않아도 될까요?
“논리적인 사고란 것이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간단하지만, 추상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토대로 그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그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바로 요즘 심리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수학 공부를 통해서도 충분히 작업기억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 영재교육,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영재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같은 개념으로 보는 분들이 많아요. 엘리트 교육은 일본식 교육제도에 가깝습니다. 상위 20~30%의 학생들을 그들의 수준에 따라 고등학교에 배치하는 교육을 의미하죠. 쉽게 말하면 ‘평준화 교육’의 반대말로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고 있어요. 좀 더 수준이 높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학생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를 대비하죠. 사교육과 과다 학습 문제에 대해 많은 분이 ‘대학입시’를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생각과는 달리 사교육과 과다 학습 문제의 주요 대상은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학년생입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사교육을 가장 많이 받는 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입니다. 고등학생도 고1이 고3보다 비율이 더 높고요. 10대 초중반은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다양한 활동을 함으로써 사회성과 기초소양을 키워야 할 때인데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학생들은 과다 학습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위해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이 현실이죠. 지나친 입시경쟁이 영재 발굴과 양성에 영향을 미치진 않나요?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 문제가 입시경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죠. 입시경쟁은 영재교육에서도 지나친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폐해를 초래합니다. 입시와 내신의 중압감 속에 성장하는 영재들은 자연스럽게 완벽주의에 빠지게 되고, 완벽주의는 창의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질 수 있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는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향한 도전하는 의지가 줄어들고, 창의적 사고력도 증진되기 어렵게 합니다.”
─ 대한민국의 영재교육 시스템이 직면한 가장 큰 쟁점은 무엇일까요?
“현재 전국에 8개의 과학영재학교와 20개의 과학고가 있습니다. 과학고와 영재학교의 학생 선발 방식 차이로 인해 두 그룹 간의 학생들 수준이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고, 영재학교 간의 격차도 큽니다. 영재학교는 3차에 걸친 선발 시험을 통해 전국의 모든 영재를 자유롭게 선발할 수 있는 반면, 과학고는 해당 지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험 없이 수학, 과학 내신 성적으로만 선발합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수도권 몇 개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 과학고는 이류 영재교육기관으로 전락했고, 영재교육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전국 최고의 영재들이 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수학올림피아드를 예로 들면, 최상위권 학생들 수십 명은 모두 서울과학고 학생들뿐이에요. 영재교육에서도 지나친 동종교배는 좋지 않습니다. 서울과학고에 입학한 학생들 대부분이 학습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상당수 학생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죠.
그동안 영재교육은 확대일로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차분히 돌이켜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왕 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의 격차가 벌어진 데다가 두 학교가 영재교육진흥법 상 구별되는 만큼 영재학교를 제외한 20개의 일반 과학고는 일반 학교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입시경쟁 속 영재교육,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당연히 영재들의 재능을 잘 살려서 그들이 학업 성취를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충분한 지식과 더불어 창의적인 사고력을 갖도록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훌륭한 지식인이나 실력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잖아요. 당장 입시보다는 좀 더 깊고, 넓은 사고와 관심을 갖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문제는 과열된 입시 문화에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죠. 하지만 희망적인 점은 부모, 교사, 교육부 등 우리 교육에 전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과학영재학교 등을 중심으로 교육의 변화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아이를 영재로, 또 영재 자녀를 수재로 키으고 싶은 부모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국가대표의 어머니들에게 공통점이 있어요. 대부분 아주 침착하다는 점이에요. 영재교육은 효율만 쫓는다면 결코 좋은 성과가 나지 않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몰아가면 오히려 최고가 되기 어렵죠. 머리 좋은 아이를 진정한 실력자로 키우는 과정은 운동선수나 음악연주가를 키우는 과정과는 전혀 다릅니다. 아이의 정서와 학습 태도, 그리고 성격 등을 살펴 가며 천천히 가야 최고의 학업 성취도 이룰 수 있죠. 결국, 영재교육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말은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출처:https://edu.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3/06/2024030680154.html?main_top/장희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