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이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는지요.
愼獨 : 신독(삼갈 신, 홀로 독)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출전 大學(대학).
일화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작년 2월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한 학생을 데리고 상담을 오셨습니다. 정시로 건국대 생명공학에 합격한 학생이었는데, 어머님께서 “약대를 많이 선발하니 올해 1년을 다시 해봐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1년을 더 공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충분히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잠시 머뭇거리시며, “그런데 소장님. 제가 아이를 봤을 때 확신이 서질 않아요. 고3때도 매번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주말에는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게임만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올 1년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까 싶어요”
저는 학생을 보며 물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게 사실이니?”. 학생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님이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내키지 않았던 듯 보였습니다. 다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괜찮아. 선생님이 너를 혼내려는 게 아니야. 단지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네게 해 줄 얘기가 있으면 해 주려고 하는 거란다”. 그제 서야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네”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약대 많이 가고 싶니?”. “네...” 학생은 짧은 답변이었지만 약대에 대한 의지가 강해 보였습니다. “그럼 이제 휴대폰, 음악, 게임 등등 네게 방해되는 요소는 안 할 수 있겠니?”. 학생은 대답하기를 주저했습니다. 아무래도 지킬 자신이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안 할 자신 있니? 안 할 자신 있으면 선생님이 약대 갈 수 있게 최대한 도와줄게”. 학생은 그제 서야 “노력해 보겠습니다”라고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길게 숨 호흡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널 도와줄 수가 없겠구나. 노력해 보겠다가 아니라 안 하겠다고 해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할 시간을 줄게 조금만 생각해 보렴”. 약 1분 안 되는 시간이 흐른 뒤, 학생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 안 하겠습니다”.짧은 답이었지만, 그 답변에서 학생은 약대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 선생님이 약대 갈 수 있게 도와줄게. 그리고 오늘 돌아가서 공부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리스트로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 놓으렴. 그리고 올 1년 동안은 리스트에 적힌 요소들을 다시는 안 한다고 꼭 약속해 주렴”.
그러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 갔습니다. “혹시 ‘신독’이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니?”. “아니오. 처음 들었어요”. 예, 아니오 단답형의 짧은 답변에서 “처음 들었어요”라는 추가적인 말까지. 학생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신독이라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일부러 강조하기 위해 물었던 것입니다.“신독은 남이 보든 안 보든 삼갈 수 있는 모습을 의미해. 너도 올 1년은 부모님이 보시든 그렇지 않으시든 본인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해보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그렇게 상담이 종료 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두세 달에 한 번씩 학생만 불러 안부도 묻고, 공부 방법, 멘탈 관리 등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독려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정시 상담 때 학생을 만났습니다. 약학과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받아들고서요.너무나도 기뻤습니다. 학생 또한 좋은 결과를 받아들고 저와 재회하는 모습이 매우 고무적으로 보였습니다.
“고생했구나. 해내서 너무 뭉클하다. 성적이 많이 오른 가장 큰 이유가 뭐였다고 생각하니?”. “선생님. 참 이상한 게 있었어요. 고3 때는 공부하다가 졸리면 그냥 졸았는데, 재수할 때 졸리면 세수하거나 항상 잠을 깨고 공부할 수 있었어요. 그냥 졸리면 졸고 싶다가도 이상하게 ‘신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감사드려요”.
“선생님이 한 건 아무것도 없단다. 네가 신독의 모습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모습이 이런 결과를 낸 거지. 앞으로도 신독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길 바랄게”. “대학 가서도 가끔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신독’의 힘입니다.
출처: https://edu.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4/24/2023042400861.html: 글=김학수 에이젯·애니스터디 입시센터장